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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총알받이냐' 수십년 현장지킨 전문경영인도 CEO 손사래친다…대체 무슨일이

2021-09-13 매일경제

조회 1,081 | 추천 0 | 댓글 0 | 평점:없음

CEO 기피하는 건설업계

임기중 사고땐 징역·억대벌금
고연봉 받아도 손들 사람 없어
CSO 영입 역시 하늘의 별따기

중대재해법 피하려는 오너家
CEO 내려놓고 CSO 내세워도
경영 관여땐 처벌받을 가능성
중소형 건설사 매각 움직임도

◆ 건설업 옥죄는 중대재해법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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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서울 중구의 한 빌딩 공사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안전장비를 착용한 채 작업을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건설업계 전반에 최고경영자(CEO)를 맡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위험이 알려지면서 앞으로 역량 있는 전문가들이 기피할 것이란 염려가 나온다. 안전사고에 불가항력적인 성격이 있는 건설업에선 앞으로 CEO가 부담해야 할 책임의 무게가 경제·사회적 보상보다 훨씬 더 막중해지기 때문이다.

12일 대형 건설사 A사 CEO는 "CEO로 임명돼 연봉을 수억 원씩 받는다 해도 임기 중 사고가 발생하면 벌금과 변호사 비용으로 연봉보다 훨씬 큰 금액을 뱉어내야 한다"며 "CEO직을 맡아야 할 유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차기 CEO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임원이 회사를 그만두면 '혹시 CEO 자리를 맡기 부담스러워 사표 낸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라고 전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이 워낙 강하다 보니 최고안전책임자(CSO) 영입도 쉽지 않다. 서울의 한 대학 안전관련 학과 교수는 "최근 동료 교수가 중견 건설사 CSO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사고가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게 되는 마당에 누가 그 자리에 가려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앞으로 CSO가 CEO보다 배 이상 많은 급여를 받게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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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경영에 관여하는 대주주들의 경우 CEO직을 그만두거나 CSO직을 신설한다고 사고 발생 책임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은 건설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주체가 책임을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주주 일가가 CEO직에서 물러났다 하더라도 이사회를 통해 여전히 경영에 관여할 경우 건설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한 것으로 해석돼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한국주택협회와 법무법인 세종이 공동 개최한 웨비나에서 허현 세종 변호사는 "오너·회장님 등이 비록 법인의 공식 조직도에는 없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 경영에 관여하고 권한과 책임을 행사한다면 이들도 중대재해법이 규정한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한다는 게 지배적 견해"라고 말했다.

CSO직을 신설하는 경우엔 안전보건관리업과 관련한 인사권과 예산권을 모두 총괄하는 독립된 대표이사급(CEO급)으로 CSO를 임명해야 기존 CEO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충고도 나왔다. 김동욱 세종 변호사는 "CSO를 '각자 대표이사'로 등재해 안전보건 관리와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맡기는 한편 기존 CEO는 관련 업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아야만 사고 발생 시 CEO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일 전무이사급을 CSO로 선임했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CSO가 아닌 CEO가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오히려 CEO의 책임인 안전보건관리 업무를 다하지 않고 부하 직원에게 떠넘긴 무책임한 CEO로 비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자회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의 경우 지주사에서 책임질 수도 있다. 원칙적으론 지주사가 처벌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주사가 자회사의 안전 관련 예산·조직 등에 구체적으로 관여한 경우라면 사고 발생도 지주사 책임이란 해석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올해 1월 곧장 시행됐다면 지난 6월 발생한 광주 재개발 현장 붕괴 참사의 책임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아니라 지주사인 HDC 측이 지게 됐을 것이란 뜻"이라고 비유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대재해법에 대비하기 위한 각종 비용도 건설사 입장에선 부담이다. 먼저 조직·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법 시행령에 따르면 시공 능력 200위 이내 건설사는 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외라도 업종 및 사업 규모에 따라 정해진 수만큼의 안전보건 전문인력을 사업장에 배치해야 한다. 사업장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점검하는 보고서도 마련해야 한다. 김동욱 변호사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보건에 필요한 최소 요건만 요구하지만 중대재해법은 적정 수준을 유지하라고 요구한다"며 "따라서 인원·예산 모두 기존의 기준보다 더 높여야 형사소송에 돌입했을 때 유리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조항이 사고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더 키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 건설업체 CEO는 "중대재해법이 통과한 이후 현장관리책임자나 담당 임원조차도 크게 느슨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법에서 안전사고의 책임을 또렷하게 CEO로 지목해 놓자 현장책임자나 임원에겐 '남의 일'이 된 것 같다"며 "일부러 사고를 내려고 하진 않겠지만 담당자 개개인이 본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책임지던 상황과는 달리 오히려 사고 위험이 더 늘어난 셈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극단적으로는 중소형사 건설사를 중심으로 대주주들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회사를 매각하는 사례까지 나올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정치인들이나 관계 기관이 맘에 들지 않는 오너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대재해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공사를 아예 피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건설사인 B사는 얼마 전부터 대규모 토목공사 수주 경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B사 대표이사가 '사고 발생이 잦은 난도 높은 공사는 따오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며 "중대재해 발생으로 인한 타격이 일감이 줄어들어 입게 되는 경영상 손실보다 더 무섭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C사 대표는 "타워크레인 무인화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노조의 반대로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며 "정부나 노조는 건설현장에 근로자를 더 고용하라고 하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니 앞으로 누가 건설업을 계속하고 싶겠느냐"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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